2026/04/16 4

흰 유니폼을 입다

— 간호사가 되던 날, 마스크가 방어막이 된 날 —​간호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나는 늘 '사람을 돕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그게 거짓말은 아니다.하지만 전부도 아니다.​솔직히 말하면, 마스크를 항상 쓸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도 있었다.​나는 20살 때 이미 알았다.비염이 있는 내가 마스크 없이 일하는 직업은 힘들겠다는 걸.​의료직은 마스크가 필수다.그게 나한테는 직업적 이점이었다. 이게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직업 선택에 비염이 영향을 미쳤다니.​하지만 비염인 여러분,이런 고민 해본 적 있죠?​직업이나 직장 환경을 고를 때, 비염 상태에 영향받은 적.먼지 많은 환경은 안 되고,건조한 사무실도 힘들고,에어컨 바람이 직접 닿는 자리도 피하고 싶고.(진짜 깐깐하네 내가 봐도...

비염일기 2026.04.16

그가 연락을 끊은 이유

— 비염과 사랑 사이, 그 아프고 우스운 이야기 —​대학교 3학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같은 학과 동기였다.​조용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나는 그 사람을 꽤 오래 좋아했다.​마음이 생기면서 동시에 걱정도 생겼다.​'비염 때문에 안 좋아하면 어쩌지.'​​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걱정인데,그때는 진짜 진지했다.​어느 날 영화를 같이 보게 됐다. 영화관은 비염인에게 양날의 공간이다.어둡고 조용해서 좋은 것 같지만,에어컨이 강하고 건조하고,조용해서 소리가 더 잘 들린다.​나는 영화관 가기 전에 코 세척을 했다.식염수로 세척하면 잠깐은 덜하거든.이것도 비염인들만 아는 사전 준비 루틴이다.​영화가 시작됐다.처음 30분은 괜찮았다.​근데 에어컨이 직접 닿는 자리였다.차가운 바람이 코로 들어오면서 점막이 자극..

비염일기 2026.04.16

도서관의 킁킁이

— 조용한 공간이 비염인에게 공포인 이유 — 도서관은 비염인에게 특별한 공간이다.​공부할 수 있는 조용하고 좋은 환경인 동시에, 내가 내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공간이기도 하다.​시험 기간이 되면 도서관은 꽉 찬다.조용하다.모두가 집중하고 있다.​그 조용함 속에서 내가 킁킁거리면, 그 소리가 마치 앰프를 통해 나오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실제로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걸 머리는 알지만, 느낌은 다르다.​이거 비염인들 다 공감하죠?조용한 공간에서 나만 내는 소리에 대한 그 자의식.​나는 자리 선택에 신중했다.벽 쪽 구석 자리.옆에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이게 다 비염 소리 때문이다.남들한테 덜 들리고, 남들이 덜 신경 쓰일 것 같은 자리.​내가 도서관에서 개발한 루틴이 있다.​한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

비염일기 2026.04.16

미팅의 재앙 연대기

— 대학교 소개팅의 현실 — 대학교 1학년 봄. 학과 선배가 미팅을 주선해줬다.​나는 설레면서 동시에 두려웠다.설레는 이유는 다들 알 거고, 두려운 이유는 딱 하나였다.​'오늘 비염이 얼마나 심할까.'​미팅 당일 아침, 나는 날씨부터 확인했다.​맑은 날이면 꽃가루가 문제고, 흐린 날이면 습도가 문제다.비염에게 좋은 날씨란 없다.그냥 어느 정도냐의 차이일 뿐.​비염약을 먹었다.졸음 부작용 적다는 거.손수건 두 개를 핸드백에 넣었다.하나는 보여도 되는 거, 하나는 비상용.​티슈도 미니 팩으로 세 개.식염수 스프레이도 화장품 파우치 안에.출동 준비 완료.​카페에 도착했다.처음 30분은 괜찮았다.​근데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코가 슬슬 자극받기 시작했다.비염인들 다 알죠, 뜨거운 음식이나 음료 먹으면 콧물이..

비염일기 202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