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염과 사랑 사이, 그 아프고 우스운 이야기 —
대학교 3학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같은 학과 동기였다.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꽤 오래 좋아했다.
마음이 생기면서 동시에 걱정도 생겼다.
'비염 때문에 안 좋아하면 어쩌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걱정인데,
그때는 진짜 진지했다.
어느 날 영화를 같이 보게 됐다.

영화관은 비염인에게 양날의 공간이다.
어둡고 조용해서 좋은 것 같지만,
에어컨이 강하고 건조하고,
조용해서 소리가 더 잘 들린다.
나는 영화관 가기 전에 코 세척을 했다.
식염수로 세척하면 잠깐은 덜하거든.
이것도 비염인들만 아는 사전 준비 루틴이다.
영화가 시작됐다.
처음 30분은 괜찮았다.
근데 에어컨이 직접 닿는 자리였다.
차가운 바람이 코로 들어오면서 점막이 자극됐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면서.
영화 소리에 묻히기를 바라면서.
킁.
조용히.
또 킁.
영화 중간쯤, 그가 나를 봤다.
"괜찮아?" 낮게 물었다.
"응, 괜찮아..ㅎㅎ" 나는 짧게 대답하고 스크린을 봤다.
영화가 끝나고 나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답장이 늦어졌다.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됐다.
나는 혼자서 생각했다.
'혹시 비염 때문이었나?'
비염인들은 알 거다.
이런 상황에서 '비염 때문이었나'를 떠올리는 그 습관을.
뭔가 잘못됐을 때, 비염이라는 나쁜 이유를 먼저 들이미는 그 자책.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남편을 만났다.
첫 만남 때 킁킁거렸고, 남편은 "비염이에요?"라고 물었고, 내가 "네, 좀 심해요"라고 했고,
남편은 "아 그렇구나, 힘들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대화로 넘어갔다.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비염을 문제로 보지 않는 그 태도.
비염이 있어도 사랑은 온다.
늦게 올 수도 있고 멀리 돌아올 수도 있지만,
진짜 맞는 사람은 킁킁거리는 걸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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