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 소개팅의 현실 —

대학교 1학년 봄. 학과 선배가 미팅을 주선해줬다.
나는 설레면서 동시에 두려웠다.
설레는 이유는 다들 알 거고, 두려운 이유는 딱 하나였다.
'오늘 비염이 얼마나 심할까.'
미팅 당일 아침, 나는 날씨부터 확인했다.
맑은 날이면 꽃가루가 문제고, 흐린 날이면 습도가 문제다.
비염에게 좋은 날씨란 없다.
그냥 어느 정도냐의 차이일 뿐.
비염약을 먹었다.
졸음 부작용 적다는 거.
손수건 두 개를 핸드백에 넣었다.
하나는 보여도 되는 거, 하나는 비상용.
티슈도 미니 팩으로 세 개.
식염수 스프레이도 화장품 파우치 안에.
출동 준비 완료.
카페에 도착했다.
처음 30분은 괜찮았다.
근데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코가 슬슬 자극받기 시작했다.
비염인들 다 알죠, 뜨거운 음식이나 음료 먹으면 콧물이 나오는 그 현상.
혈관이 확장되면서 점막이 자극받는 거다.
"저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코를 제대로 풀었다.
거울을 봤다.
코 주변이 조금 빨개졌다.
BB크림으로 다시 가렸다.
심호흡. 다시 나갔다.
이 루틴을 나는 '비염인의 화장실 피신 작전'이라고 부른다.
미팅, 소개팅, 중요한 자리마다 반드시 한 번씩 발동된다.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내가 말을 많이 하게 됐는데, 말하면서 킁킁거리는 소리가 났다.
"혹시 감기에요?"
이 말. 비염인들, 이 말 몇 번이나 들어봤어요?
그 미팅 이후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성격이 안 맞았을 수도, 비염 때문일 수도, 그냥 인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냥 인연이 아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깨달은 게 있다.
비염이 있어도 연애를 잘 하는 사람들은 한다.
비염이 없어도 연애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남편이 있다.
그 남편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킁킁거렸는데도 연락을 계속 했다.
"비염 있어요?" "네." "아, 그렇구나." 그리고 그 다음 대화로 넘어갔다.
그게 전부였다.
그 사람이 남편이 됐다.
비염인 여러분, 미팅 걱정 조금만 덜어요.
진짜 맞는 사람은 그걸로 도망가지 않는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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