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일기

향기를 모르는 코

코맹맹이 솔이 2026. 4. 14. 23:09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능력 상실  —

어느 날 친한 친구가 물어왔다.

"야, 이 향수 어때? 나한테 잘 어울려?"

그러면서 손목을 내 코 앞에 가져다 댔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사실 냄새가 거의 안 났다.

아주 희미하게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그 애매한 느낌.

"응..? 좋은 것 같은데ㅎㅎ?"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친구는 만족해했다...^^

 

 

비염이 오래되면 후각이 약해진다.

이건 비염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코 점막이 늘 부어있으니,

냄새 분자가 후각 수용체까지 제대로 닿지 못하는 거다.

나는 이 사실을 의학적으로 알고 있다.

간호사니까.

근데 안다는 게 위로가 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커피 향을 잘 못 맡는다.

빵 굽는 냄새가 희미하다.

봄비 내린 후 흙냄새,

엄마가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들만큼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가끔 진짜 슬프다.

한 번은 집에서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방에 들어갔다가 깜빡 잊었다.

나중에 남편이 "여보, 냄비 타고 있어!!!"하고 소리쳤다.

타는 냄새가 났던 거다.

근데 나는 못 맡았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꽤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이게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안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근데 또 웃긴 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상태였기 때문에 '원래 냄새라는 게 이 정도인가보다' 하고 살았다는 거다.

그러다 20대에 갑자기 비염이 좀 나아진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커피 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 이게 원래 커피 냄새구나.

이렇게 진하구나.

엄마가 끓이는 찌개 냄새가 이렇게 구수했구나.

그 며칠이 어찌나 감사하고 행복하던지.

근데 또 금방 비염이 재발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 짧은 체험이 더 아쉬웠다.

언젠가 비염이 정말 완치된다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냐고?

꽃가게에 가서 코를 실컷 묻고 싶다.

그리고 된장찌개 냄새를 한껏 맡고 싶다.

그리고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아...' 하는 그 감탄을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