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슬픈 능력 상실 —
어느 날 친한 친구가 물어왔다.
"야, 이 향수 어때? 나한테 잘 어울려?"
그러면서 손목을 내 코 앞에 가져다 댔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사실 냄새가 거의 안 났다.
아주 희미하게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그 애매한 느낌.
"응..? 좋은 것 같은데ㅎㅎ?"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친구는 만족해했다...^^

비염이 오래되면 후각이 약해진다.
이건 비염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코 점막이 늘 부어있으니,
냄새 분자가 후각 수용체까지 제대로 닿지 못하는 거다.
나는 이 사실을 의학적으로 알고 있다.
간호사니까.
근데 안다는 게 위로가 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커피 향을 잘 못 맡는다.
빵 굽는 냄새가 희미하다.
봄비 내린 후 흙냄새,
엄마가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들만큼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가끔 진짜 슬프다.
한 번은 집에서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방에 들어갔다가 깜빡 잊었다.
나중에 남편이 "여보, 냄비 타고 있어!!!"하고 소리쳤다.
타는 냄새가 났던 거다.
근데 나는 못 맡았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꽤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이게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안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근데 또 웃긴 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상태였기 때문에 '원래 냄새라는 게 이 정도인가보다' 하고 살았다는 거다.
그러다 20대에 갑자기 비염이 좀 나아진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커피 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 이게 원래 커피 냄새구나.
이렇게 진하구나.
엄마가 끓이는 찌개 냄새가 이렇게 구수했구나.
그 며칠이 어찌나 감사하고 행복하던지.
근데 또 금방 비염이 재발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 짧은 체험이 더 아쉬웠다.
언젠가 비염이 정말 완치된다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냐고?
꽃가게에 가서 코를 실컷 묻고 싶다.
그리고 된장찌개 냄새를 한껏 맡고 싶다.
그리고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아...' 하는 그 감탄을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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