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일기

수능날 아침, 코야 제발

코맹맹이 솔이 2026. 4. 14. 23:09

—  인생에서 가장 긴 4시간 40분  —

수능 전날 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자려고 했다.

비염 때문에 코가 막혀 숨쉬기가 불편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입으로 숨을 쉬면 목이 건조해지고,

코로 쉬려면 막혀서 힘들고.

이 이중고가 하필 수능 전날 밤에 절정을 이루었다.

비염인들 다 아시죠?

중요한 날일수록 비염이 더 심해지는 그 법칙.

 

마치 코가 달력을 보고 '오늘 중요한 날이구나, 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것 같다.

수능,

면접,

발표,

소개팅.

다 마찬가지다.

비염은 절대 쉬어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을 먹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비염약 먹으면 콧물은 줄어드는데 졸음이 온다.

4시간 40분짜리 시험에서 졸면 끝이다.

안 먹으면 코는 계속 흐른다.

이 비염인 수험생들의 최대 딜레마.

나는 반 알만 먹기로 했다.

시험장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았다.

코를 한 번 풀었다.

또 풀었다.

1교시 국어가 시작됐다.

지문을 읽는데 코가 슬슬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손수건으로 닦았다.

또 흘렀다.

또 닦았다.

옆 학생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내 킁킁 소리가 들린 거다.

죄송합니다..

속으로 말했다.

수학 시험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어려운 문제에 집중하려는데 코가 막혀서 머리가 무거웠다.

킁킁거리는 내 소리가 조용한 시험장에서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게 실제인지 내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비염인들 다 알죠,

그 자의식? 조용한 곳에서 내가 내는 소리가 배로 신경 쓰이는 그것.

시험이 끝났다.

마지막 종이 울리는 순간, 나는 손수건을 내려놓고 크게 코를 풀었다.

그 시원함이란.

엄마가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어땠어?" 엄마가 물었다.

"모르겠어..근데 코는 안 터졌어ㅠㅠ"

내 대답이 그랬다.

시험 결과 얘기보다 코 얘기가 먼저 나왔다.

엄마는 잠깐 뭔가 말하려다 그냥 웃었다.

지금 수험생인 비염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시험날 비염약 전략은 미리 연습해봐.

수능 두 달 전부터 같은 시간대에 반 알 먹고 어떤 반응이 오는지 체크해.

그리고 손수건 두 개는 꼭 챙겨.

비염이 있어도 수능 잘 볼 수 있다.

나는 못했지만ㅎㅎ.. 너희는 할 수 있다.

(이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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