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일기

웨딩드레스와 빨간 코

코맹맹이 솔이 2026. 4. 20. 22:03

—  인생 최대 이벤트에도 비염은 쉬지 않는다  —

결혼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걱정한 건 웨딩 드레스 사이즈도,

예식장 날씨도 아니었다.

비염이었다.

웨딩 사진 촬영 날,

오전 6시에 스튜디오에 갔다.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이미 코가 슬슬 시동을 걸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쓰는 제품들 향기가 자극이 됐다.

향수, 픽서 스프레이, 각종 화장품.

비염에게 이것들은 그냥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코 주변이 빨개요. 좀 더 커버해드릴게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말했다.

나는 '네, 부탁드려요'라고 했다.

파운데이션 한 겹 더.

촬영이 시작되면서 포즈를 잡을 때마다 신경이 코로 갔다.

지금 흐르나?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동시에 코를 모니터링하는 그 멀티태스킹.

사진작가분이 "신부님, 조금 더 자연스럽게 웃어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연스러운 웃음이에요ㅠㅠ'

결혼식 당일.

D-Day

아침부터 비염이 '나 오늘 적극 참가할게요' 신호를 보냈다..

입장 전에 마지막으로 코를 풀고 싶었는데,

메이크업이 망가질까봐 참았다.

부케를 들고 아빠 옆에 섰다.

입장곡이 울려퍼졌다.

남편이 보였다.

그 순간 감동이 왔다.

눈물이 나오려 했다.

근데 눈물과 콧물은 연결되어 있다.

비염인들 다 알잖아요..하...

울면 콧물도 같이 나온다는 거.

나는 눈물을 참았다

감동을 참았다

코도 같이 터지면 안 되니까

남편이 내 손을 잡으면서 귓속말을 했다.

"예뻐"

나는 속으로만 울었다

얼굴은 웃으면서

코는 참으면서

식 끝나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오늘 울고 싶었는데 참았어."

"왜?"

"울면 콧물도 같이 나오잖아."

남편이 웃었다

"그랬구나. 수고했어"

 

신혼여행은 동남아로 갔다.

덥고 습한 나라.

습도가 높으면 비염이 좀 나은 편이라 기대를 했다.

실제로 한국보다는 나았다.

콧물보다 땀이 더 많이 흘렀다.

비염이 있어서 생긴 첫 번째 부부 타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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