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일기

의사 앞에서 울었던 날

코맹맹이 솔이 2026. 4. 17. 23:26

—  의료인이 환자가 되는 아이러니  —

간호사 5년 차가 됐을 때,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치료해보자.

이비인후과에 예약을 잡았다.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님 외래.

기다린 지 한 달 만에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코 내시경을 했다.

내가 스스로 시행하기도 하는 그 검사를 환자로 받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하비갑개 비대가 심하고,

알레르기 반응도 있어요.

비중격도 약간 휘었고요."

나도 그 모니터를 봤다.

간호사 눈으로 보면 내 코 안이 왜 이렇게 힘든지 이해가 됐다.

좁고, 부어있고, 점막이 예민하다.

치료 방법들을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비염은 완치가 어려워요. 관리하는 병이에요."

비염은 완치가 어렵다.

이미 알고 있었다.

간호사로서,

비염에 대해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근데 막상 내 코에 대해,

내 담당 의사로부터,

직접 들으니 달랐다.

진료실을 나와서 복도 의자에 앉았다.

눈물이 나왔다.

진짜로.

서른한 살, 간호사, 병원 복도에서 혼자 울었다.

내가 의료인인데 내 비염 하나 못 고친다는 게 자괴감으로 왔다.

환자들에게 '이렇게 하면 좋아질 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나는 35년째 이 코를 달고 산다는 게.

합리적이지 않은 자책이라는 걸 알았다.

비염은 내 의지나 능력 문제가 아니니까.

근데 그날은 그냥 슬펐다.

그때 마침 아는 선배 의사를 마주쳤다.

"야, 비염 완치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관리해야 하는 거야."

"알아요. 근데 직접 들으니 좀 다르네요."

선배가 어깨를 두드렸다.

"잘 관리하는 거야. 그게 최선이야."

완치가 아닌 관리.

이걸 받아들이기까지 35년이 걸렸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왜 안 낫나'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관리하나'를 고민하게 됐다.

그게 어른이 되는 방식 중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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